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5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경산에서 신규 확진되는 환자 중에서 절반이 넘게 신천지 교회 내지는 이 교회와 관련된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며 "경북 전체로 볼때에도 경산에서 발생하는 규모 자체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오전 0시 기준 경북 지역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총 861명이다.
이중 신천지 교회 관련 사례는 348명(40.4%)이다.
청도 대남병원 관련(115명·13.4%), 성지순례 관련(49명·5.7%), 봉화 푸른요양원(36명·4.2%), 칠곡 밀알사랑의집 관련(24명·2.8%), 경산 서린요양원(13명·1.5%), 한국전력지사(4명·0.5%), 경산 엘림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3명·0.3%), 김천소년교도소(3명·0.3%), 경산 참좋은재가센터(2명·0.2%) 등이다.
나머지 264명(30.7%)은 산발적으로 발생했거나 조사·분류가 진행 중인 사례입니다.
권준욱 부본부장은 "대구와 청도의 유행을 계속 일으켜온 초발 및 중심증폭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천지 교회의 역할이 크다"며 "그에 따라 저희가 우려하는 것은 신천지 교회와 관련된 분들에 대한 역학조사에 철저를 기하고 센터나 병원에 입원·격리시켜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의 2차, 3차 전파 그리고 또다른 집단적인 발생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며 "그 부분을 가장 우려하는 가운데 발생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경산 지역이 현재로서는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돼 좀더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산에서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이유는 경산의 지리적 특성과 신천지 교인 밀집 등이 꼽힌다. 경산은 코로나19 확진자수가 가장 많은 대구와 청도 사이에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대구와 가까워 생활권이 겹친다.
여기에 더해 경북지역의 신천지 교인 절반 가량이 경산에 거주하는데, 신천지대구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이 상당수다.
신천지를 중심으로 확산된 코로나19에 취약하다는 이야기인데, 경산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 중 60% 이상이 신천지 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13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경산 내 대표적 집단감염지 서린요양원의 경우도 최초 확진자가 신천지 신도와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산은 7만30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10개 대학교를 품고 있기도 하다. 7만여명이 넘는 청년층은 신천지 교인들의 주 포섭 대상으로, 청년층 신천지 교인들 사이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수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4일 기준 경산의 코로나19 확진자 중 전체의 30%가 20~30대 환자라는 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경산에서의 대규모 코로나19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경산의 비극이 이제 시작이 될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현재 경산시 내 신천지 신도 중 신천지대구교회 신자이자 국내 31번째 확진자와 접촉한 543명이 자가격리 중이고, 그외 신도와 교육생 245명이 능동감시 중이라는 점에서 확진자수는 더욱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산시어떤곳인가?
동쪽은 경주시·영천시, 서쪽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영천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41′∼128°58′, 북위 35°42′∼35°59′에 위치한다. 면적은 411.70㎢이고, 인구는 25만 688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5개 면, 7개 행정동(28개 법정동), 228개 행정리(137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경산시 중방동에 있다.
자연환경
대구분지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남쪽과 북쪽은 산지를 이루고 중앙부에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북부산지는 팔공산(八公山)의 연장부이고, 남부산지는 태백산맥이 서쪽으로 갈라져 형성되어 있다.
동·서·남 3면은 금박산(金箔山, 432m)·구룡산(九龍山, 675m)·선의산(786m)·용각산(龍角山, 693m)·상원산(上院山, 670m)·동학산(東鶴山, 603m)·병풍산(屛風山, 576m)·금성산(金城山, 433m)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에 도천산(到天山, 260m), 하양읍 쪽에는 소리산(342m)·무학산(舞鶴山, 593m) 등이 있다.
남천(南川)의 개석에 의해 형성된 남천분지와 오목천과 관란천(觀瀾川)의 개석에 의해 형성된 용성·남산분지지역으로 구분된다. 남부산지의 북쪽, 즉 시 중앙부는 금호평야(琴湖平野)로 넓게 트인 형상을 이룬다.
금호평야는 금호강(琴湖江)과 그 지류의 퇴적작용에 의해 형성되어 경상북도 제일의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토양이 비옥하고 좋은 수리시설을 갖춘 금호평야는 하천 양안의 자연제방을 따라 사과재배가 성하여 대구사과 생산의 중심지이다.
하천은 남천면 용각산에서 발원하여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 부근에서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남천과, 용성면 구룡산에서 발원하여 시의 도심에서 금호강에 합류하는 오목천(烏木川 또는 五木川) 등이 흐른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수성암층인 경상층(慶尙層)을 관입한 반암(班岩)·응회암(凝灰岩) 등의 화성암으로 형성되었고, 토성은 치토 또는 양토(壤土)이고, 토양은 황갈색 삼림토에 속한다.
기후는 혹서과우형(酷暑寡雨形)인 대구와 접하고 있는 내륙분지로, 한서의 차가 심한 대표적인 내륙성기후이다. 연평균기온 14.8℃, 1월 평균기온 1℃, 8월 평균기온 26℃, 연평균강수량은 1,383㎜로, 내륙분지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하며 일교차도 크다.
역사
이 지역의 초기 역사는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정동, 남천면 협석리·삼성리, 자인면 신도리, 용성면 등지에서 선돌·고인돌·민무늬토기 등의 유물·유적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이 지역은 신석기시대 이래 금호강의 지류인 오목천·남천·대창천 등의 유역에 사람의 거주가 많았던 것으로 보이며, 점차 사회 분화가 이루어져 일찍부터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던 듯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지방에는 변진 24개국 중의 하나인 압량(押梁) 또는 압독국(押督國)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이는 2세기 전반 이래 신라의 세력권에 포함되었는데, 『삼국유사』에는 102년신라의 파사왕이 음즙벌(音汁伐)·실직(悉直)과 함께 압량을 점령했다는 기록과 146년(일성왕 13)압량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그 무리들을 남쪽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1982년임당고분 발굴시 압독국의 유물이 많이 출토됨으로써 점차 압독국의 실상이 밝혀지고 있다.
신라에 병합된 뒤 어느 정도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가 5세기 말 이후 군현제가 실시되면서 군으로 편제되었고 다시 압량주가 되었다. 7세기 중엽 김유신(金庾信)과 김인문(金仁問) 등이 이 곳의 군주(軍主) 또는 총관(摠管)으로 있을 때 백제군을 공격하기도 했고,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시 장산군(獐山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940년(태조 23) 전국 군현명칭 개정 때 장산군(章山郡)이 되었고, 1018년(현종 9)경주에 속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가 설치되었다. 충선왕 때 왕의 이름을 피하여 경산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충숙왕 때에는 국사 일연(一然)의 고향이므로 현령관(縣令官)으로 읍격이 높아졌고, 공양왕 때에는 왕비의 출신지라 하여 군이 되었다.
995년(성종 14) 하주자사(河州刺史)가 설치되었던 하양은 현종 때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본래 신라의 노사화현(奴斯火縣)에서 개명된 자인현(慈仁縣)은 장산군에 속해 있다가 현종 때 경주 속현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진량지역은 신라의 마진량현(麻珍良縣)에서 여량현(餘糧縣)으로 개명되어 장산군에 속해 있다가 뒤에 구사부곡(仇史部曲)으로 강등되어 경주에 속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기 지방제도의 정비에 따라 경산에는 현령, 하양에는 현감을 두었고, 자인은 경주부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경산의 호수는 318호, 인구는 3,049인, 하양현의 호수는 177호, 인구는 2,156인, 자인현의 호수는 237호, 인구는 2,216인이었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의하면 관개시설인 제언(堤堰)의 수는 경산현이 18개, 하양현이 15개, 자인현이 27개였는데, 이들은 보(洑)와 함께 조선 후기에도 계속 증가되어 이 지역에서 벼농사가 매우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농업생산성이 높은 데 비해, 하양·자인·경산 3현은 모두 소읍벽현(小邑僻縣)으로 부근의 영천과 경주만큼 재지사족(在地士族)이 많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해 이 지역이 크게 황폐해진데다가 1601년대구에 감영이 설치됨에 따라, 경산현과 하양현은 일시 대구부에 속했다가 1607년 복구되었다.
소속 주현인 경주로부터 수탈당해 오던 자인현은 1633년(인조 11) 이래 현지 주민들의 적극적인 진정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그 해백렴(白濂)이 자인현의 독립을 청원하는 소장을 올린 데 이어 김응명(金應鳴)·이광후(李光後)·이창후(李昌後) 등이 현인(縣人) 300여 명을 이끌고 상경하여 진정하였다. 4년 뒤에도 이시겸(李時兼) 등의 상소가 있어 독립하게 되었고, 구사부곡도 1653년(효종 4)에 현인 전우벽(田禹闢) 등의 진정에 따라 자인현에 합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 때 종래의 현이 모두 군으로 바뀌었고, 1914년 부·군·면의 폐합에 따라 하양군·자인군과 신령군의 남면 일부를 병합하게 되었다. 당시 제언과 보가 500여 개에 달했으며, 저수지가 36개, 소류지가 351개에 이르러 경상북도에서 수리시설이 가장 잘 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1956년 7월 경산면이, 1973년 7월안심면과 하양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7월안심읍과 고산면이 대구시로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시로 승격되어 시와 군이 분리되었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의해 경산시가 되었다. 1997년 11월에는 진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2004년 10월서부동이 서부1동, 서부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2006년 현재 2개 읍(하양·진량), 6개 면(와촌·자인·용성·남산·압량·남천), 7개 동(중앙·동부·서부1동·서부2동·남부·북부·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물·유적
압독국(押督國)의 고지로서 선사시대 이래로 많은 유적과 유물을 남기고 있다. 선사시대 유적은 조영동 일대의 민무늬토기유적과 옥산동·옥곡동, 자인면 신도리, 남산면 전지리·갈지리·연하리, 용성면 고죽리·미산리·도덕리, 하양읍 대학리, 남천면 협석리, 와촌면 박사리에 고인돌이 있고, 대정동과 압량읍 현흥리에 선돌이 있다. 삼한시대 유적은 목재농기구·칠기류 등 생활유물이 대량 출토된 임당동 저습지유적이 있다.
삼국시대의 유적은 임당동고분군(사적 제300호)·조영동고분군(사적 제331호), 고대식 광장인 압량읍 압량리에 경산 병영유적(사적 제218호), 부적리고분, 자인면 교촌리고분, 와촌면 신한리·계전리·소월리고분 등이 있는데, 특히 1982년에 발굴된 임당동고분군에서는 금동관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성(土城)으로는 압량읍과 진량읍에 걸쳐 있는 압량토성이 있고, 산성으로는 용성면의 용성산성(龍城山城), 남천면의 금성산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와촌면 강학리에 690년(신문왕 10)에 창건된 불굴사삼층석탑(보물 제429호), 대한리에는 일명 갓바위 부처라 불리는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박사리에 원효암마애좌불상, 남천면 산전리에 경흥사목조삼존불좌상(慶興寺木造三尊佛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6호), 하양읍 사기리에 환성사심검당(環城寺尋劍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환성사대웅전(環城寺大雄殿, 보물 562) 등이 있다.
고건축물로는 중방동의 경산향교대성전삼문(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5호), 자인면 교촌리에 자인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6호), 하양읍 교리에 하양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7호)가 있고, 1546년(명종 1)에 건립된 용성면 곡란리의 난포고택(蘭圃故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이 있다. 정자로는 진량읍 내리리에 구연정(龜淵亭), 신상리에 식송정(植松亭)·사산정(社山亭), 자인면 북사리에 사중당(使衆堂)이 있다.
그 밖에 미추왕릉 출토의 금제수식(金製垂飾, 보물 제633호)·상감유리옥부경식(象嵌琉璃玉附頸飾, 보물 제634호)·서수형토기(瑞獸形土器, 보물 제636호)·상감초화문병(象嵌草花文甁, 보물 제239호) 등이 영남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도 자인면 원당리에 최문병의병장안장(崔文炳義兵將鞍裝, 보물 제747호), 서부리에 한장군(韓將軍)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남천면 산전리에 경산산전동분청사기요지(慶山山田洞粉靑沙器窯址, 경상북도 기념물 제40호)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경산의 삽살개(천연기념물 제368호)가 있다.
교육·문화
경산은 대승불교를 전파하신 원효대사, 이두문을 훈해하신 설총선생,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일연선사와 같은 훌륭한 선인들이 태어나신 고장이다. 현재도 영남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경일대, 대구한의대 등 10개 대학에 10만 명 넘는 대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학교부설 연구소만도 100여 개소가 있다. 이는 국내에서 대학과 연구시설이 가장 많은 학원·연구도시이며,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도시이다.
과거 교육기관을 살펴보면, 먼저 경산시 남산면 하대리에 위치한 도동재는 이두문을 훈해하신 설총선생님의 학덕을 추앙하기 위하여 설치되었으며, 매년 3월에 향사를 모시고 있다. 이곳에는 설총 선생의 신도비와 단소가 있다.
경산시에 위치한 조선 중기 이후 명현(明賢)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기관(私設機關)인 서원으로는 금호서원, 조곡서원, 관란서원이 있다. 금호서원은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에 위치하고 있다. 1684년(숙종 10)에 문경공허조의 신위를 모시기 위하여 하양읍 금락동에 창건하였는데 후에 서사동으로 이건하였으며, 1871년(고종 8)에 훼손, 철거되었다가 1913년 현재의 부호리에 복원하였다. 매년 2월 상정에 배한다.
조곡서원은 경산시 남산면 조곡리 394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4년(정종 18)에 자인의 유림과 탐진 안씨 후손이 그 선조 오성군안우와 그 4세손인 고은안지를 모신 사당이다. 매년 3월 상정에 배향한다.
관란서원은 경산시 용성면 미산리 86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서원은 조선중기의 성리학자 회재이언적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향사를 매년 종구일(9월 9일)에 모시고 있다.
경산시에 위치한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인 향교는 하양항교, 자인향교, 경산향교가 있다. 하양항교는 임진왜란 때 불탄 후 조선 1608년(선조 41)에 대성전을, 1622년(광해군 14)에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외삼문과 명륜당, 내삼문과 대성전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현재는 하양읍 교리 15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자인향교는 조선 1562년(명종 17)에 경주의 부윤 이정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728년(영조 4)에 자인면 교촌리 230번지에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산향교는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지금의 옥곡동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681년(숙종 7)에 신교동으로 옮겨지었던 것을 1997년에 중방동 760번지로 다시 이건 하였으며 공자를 비롯한 다섯 분의 성인과 중국 4현, 동방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952년 6월 교육자치제 실시로 경산교육구청 발족하였으나, 1962년 1월 교육자치제가 폐지되면서 군행정에서 통합되었다. 그러나 1964년 1월 폐지되었던 교육자치제가 부활하면서, 군행정에서 분리되어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1989년 1월경산시 승격으로 경산시교육지원청으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1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11개교가 있다. 대학교는 11개교(영남대학교, 대구한의대학교, 대구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일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대신대학교, 대경대학교, 영남외국어대학, 호산대학교)가 있다. 아시아대학교는 2008, 대구외국어대학교·대구미래대학교는 2018년 폐교하였다.
박물관은 대학교에 위치하고 있다. 대구한의대학교박물관은 유곡동에 있으며 1995년 9월 개교 15주년을 맞이하여 개관하였다. 본관 소장품 340여 점과 각종 문화유적 발굴조사를 통한 매장 문화재 1,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의약자료실에는 400여 종의 한의약제 200여 종의 한방의료기구 및 한의도서를 전시하고 있다. 또 고고역사자료실에서는 청동기시대 이후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를 발굴상황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대구대학교 박물관은 경산시 진량읍 내리리에 위치하고 있다. 박물관은 1980년 5월 개관하였으며, 본관 10층에서 14층에 걸쳐 고고학, 역사학, 민속학, 인류학에 관한 문화유산 4,000여 점을 수집, 보관, 전시하고 있다. 10층에는 박물관장실, 학예실, 유물보전처리실 등이 있고, 11~12층에는 선사시대에서 삼국,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역사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13층 민속자료실에서는 구한말에서 근대에 이르는 목공구 및 목가구류의 민속지료를 전시하고 있다. 14층 학교연혁자료실에서는 학교사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박물관은 하양읍 금락1리에 있으며, 1980년 정식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고고자료, 미술자료, 민속자료 등 총 6,6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총 3층 건물로 1층에는 학교사 자료, 2,3층에는 선사시대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별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특별전시공간인 교회사 관련자료실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교육사업을 비롯하여 전석재 몬시뇰을 기념하는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2층에 마련된 기획전시실에서는 서화실, 병풍류, 액자, 족자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은 대동에 위치하며, 11개 전시실과 로비로 구성되어 있다. 로비에는 높이 6m의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의 탁본이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1층은 상설 전시실로 고고, 조각, 공예, 서화, 민속, 기증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발굴유물, 임당, 고지도, 기증실, 아트스페이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만 2000여 점의 유물을 수집, 보관, 전시하고 있다. 야외박물관은 학교 본관 뒤편에 있는데 이곳에는 안동댐 수몰지구에서 옮겨온 양반가옥들이 까치구멍집, 마을우물 등과 어울려 민속마을을 이루고 있다.
자인단오날에는 신라 혹은 고려시대 사람이라고 전해질뿐 확실한 내력은 모르지만 이 지역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각 지역마다 사당을 지어 모시고 있는 한 장군놀이가 진행된다. 한 장군 놀이는 한묘대제, 여원무, 팔광대놀이, 큰굿, 한 장군출정행사인 가장행렬등과 계정들소리공연, 창포머리감기, 씨름대회, 그네타기 등 행사로 이루어진다. 당시 이 지역에 왜(倭)의 무리가 도천산(到天山)에 진을 치고 백성들을 괴롭히자 한 장군은 도천산 밑 버들못둑에서 누이와 같이 여자로 변장하고 꽃관을 쓰고 춤을 추었다. 꽃관 둘레에는 광대가 둘러서서 놀이를 벌이고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같이 가락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었다. 구경꾼 중에는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의 무리도 섞여 흥에 겨워 춤을 추었다. 꽃관을 쓰고 춤을 추던 장군이 갑자기 칼을 빼어 들고 왜를 무찌를 것을 외치자 무당과 여자로 변장한 구경꾼들 손에는 모두 비수가 번쩍였다. 광대도 구경꾼도 모두가 한 장군이 위장 배치한 군사였다. 이것이 여원무의 유래이며, 한장군놀이는 국가 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 보존 되고 있다.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한 장군놀이가 성대하게 거행된다.
그리고 소원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보물 제431호 갓바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를 제공하고 갓바위 주변의 빼어난 자연경관과 어울려 한가지 소원을 염원. 성취할 수 있는 테마가 있는 갓바위 축제가 진행된다. 매년 10월 중(2~3일 정도)와촌면 대한리(갓바위 일원)에서 개최되며 토속음식축제, 소원기원제, 갓바위가요제, 연등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로 이루어진다.
2007년 2월 경산시 박물관로에 경산시립박물관이 개관하였다.
민속
이 지방의 민속놀이로 한장군제가 있는데, 동제의 성격도 띠고 있으나 놀이 쪽에 더 가깝다. 이 놀이는 매년 음력 5월 5일에 행하여지는데 한장군놀이·여원무·씨름·윷놀이·농악놀이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한장군놀이는 여원무 복장을 한 한장군과 누이동생을 꾸며 앞세우고 그 뒤에 사또행차가 따르는 일종의 가장행렬이다. 단오 때에는 이 행렬로 한장군이 진을 쳤던 곳까지 가서 여원무를 추고는 한장군사당으로 가서 제사를 올린 다음 다시 고을 원에게 여원무를 보이고 해산한다. 여원무는 30명가량이 원진을 치고 춤을 추며, 군노·사령·깐치사령으로 분장한 40여 명이 어울려 군무를 즐기는 것이다.
그 밖에도 진량읍 일대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하며, 현내리에서는 한장군단오제를 지낸다.
동제를 지내는 곳은 용성면 곡란리·송림리·고죽리와 남산면 사월리, 와촌면 신한리 등 여러 곳이 있는데, 동제의 형태는 대동소이하다. 신한리의 경우, 동제의 대상신은 마을 입구의 큰 소나무이다.
매년 음력 7월 초순에 동제 지낼 날을 받는데, 제관은 동제 지내기 15일 전에 집안에 초상이나 출산이 없는 자 중에서 선출된다. 제관이 되면 제를 위해 정진을 해야 하므로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정성이 많이 들어 제관되기를 기피하는데, 그 때에는 내림대를 잡아서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1년간 상가(喪家)집에 갈 수 없으며, 상을 당한 사람이나 임산부는 제관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제물은 일반제와 비슷하나 제물을 사러 갈 때 제관은 다른 사람과 일체 대화를 하지 않으며, 물건값을 깎지 않고 음식 장만할 때 맛도 보지 않는다. 제수경비는 마을주민이 나누어서 낸다.
신한리의 동신은 총각으로 알려져 있어서 밥은 한 그릇만 차리며, 술 대신 설탕물을 사용한다. 제를 지낸 뒤 남은 음식은 땅에 묻으며 음복을 하지 않는다. 이후 마을에 나쁜 일이 있으면, 정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여 제를 다시 지낸다.
설화·민요
이 지방의 대표적인 설화로서 무지개샘전설·배미재전설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무지개샘전설에 따르면, 옛날 용산에 장수들이 모여 산성을 쌓으려고 했는데, 돌을 산으로 옮기려고만 하면 이 산을 지키는 용이 안개를 피워 그 돌들을 들 한가운데로 날려버렸다. 그래서 도저히 성을 쌓을 수가 없으므로 장수들은 “이 고장을 침범하는 적을 막으려고 성을 쌓는다.”고 고하여 용을 설복하였다.
장수들은 용의 양해를 얻은 다음 다시 성을 쌓았는데, 먼 곳에서 돌을 날라 오는 번거로움을 덜고자 용이 살고 있는 샘 주위의 돌들을 마구 날라 갔다. 이에 용은 화가 나서 석 달 동안 가물게 하였다. 장수들은 할 수 없이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에게 용서를 빌었다. 사흘째 되는 날 대낮에 억수같이 소나기가 퍼붓더니 샘에서 무지개가 하늘로 솟아났다. 그로부터 이 샘을 무지개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배미재란 뱀 모양의 산으로 한자어로는 사산(巳山)이라고 한다. 옛날 이 산 아랫동네에서 행실이 나쁜 여자가 많이 태어났다. 어느 날 이성재라는 풍수에 밝은 이가 이곳을 지나다가 배미재의 지형을 살펴보고는 뱀이 살아서 펄펄 뛰는 형상이기 때문에 아랫마을에 못된 여자가 난다고 하면서 뱀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 서너 군데에 침을 놓았다. 그리고 나서 뱀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침 놓은 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소금 몇 가마를 부어 넣었다. 그런 뒤로는 못된 여자들이 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은고개는 큰 장수가 태어날 형국이라 하여 일본인들이 그 맥을 끊었다고 하는데, 이때 그 곳에서 피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이 고장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농업노동요 중에는 「논매기노래」보다 「모내기노래」가 더 많이 불린다. 모를 내기 전에 모를 찌는데 “절우자 절우자/ 이 모판을 절우자……어치고 저치고/ 대구손으로 밀치고……”라는 「모찌기노래」는 모를 쪄내어 묶어서 모판 밖으로 던지는 작업 과정을 ‘절우자, 어치고 저치고’ 등의 말로 잘 나타내고 있으며, 「모심기노래」보다 리듬이 빠르다.
「모내기노래」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자는 “해돋았네 해돋았네/ 동해동산에 해돋았네/ 매화일월이 돋아오는데/ 이실럴줄 모르는가”라는 사설에서부터 오후의 지겨운 한때를 즐겁게 해주는 “양사아초롱에 불밝혀라/ 첩의 방에 놀로가자/ 임도눕고 나도눕고/ 저초롱불은 뉘가껄고”라는 사설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다양하다.
「보리타작노래」도 불리는데 “엉해야 엉해야/ 물러서며 엉해야/ 아지마씨 엉해야/ 찝을주소 엉해야/ 쿵덩쿵덩 엉해야/ 깨구리보링가 엉해야/ 홀짝 홀짝 엉해야/ 중놈우보링가 엉해야/ 몽굴도 몽굴다 엉해야/ 양반우보링가 엉해야/ 샘(수염)도 지다 엉해야……”와 같이 ‘엉해야’를 받는 소리로 써서 작업 광경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보리가 튀는 모습도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 남자들이 나무하면서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어사용」도 전해진다.
그 밖에 “저건너 흰영감/ 나무하러 가세/ 등굽어 못가겠네/ ……범은 뛰지/ 뛰면 벼록이지/ 벼록이면 불찌/ 불거면 대초지……”라고 하는 「꼬리따기노래」와 동요인 「알강달강」 등도 불린다.
산업·교통
임야가 전체면적의 57.6%를 차지하며, 경지면적은 9,148㏊로 경지율은 약 22.2%이다. 그 가운데 논이 5,956㏊로 65%를 차지하고 밭이 3,192㏊로 35%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저수지로는 남매지(男妹池)와 문천지(文川池) 등이 있어 이 지역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금호평야(琴湖平野)를 중심으로 쌀이 재배되며 이외에도 근교농업으로서 대추와 사과·포도·복숭아 등의 과수 재배와 소채 재배가 행하여진다. 사과밭은 금호강 본 지류의 자연제방과 양쪽 산록 사면에 집중 분포한다. 농산물로는 참외·대추·포도가 있다. 경산대추는 빛깔이 곱고 알이 굵으며 당도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옛날에는 용성면 송림리한지가 명산물이었고, 당리리를 중심으로 사육되던 용성염소 요리는 별미로 유명하였다. 2007년 임목축적은 182만 6757㎥으로, 남천·용성·하양·와촌의 순으로 많으며 임산물 생산량은 345만 8817㎏으로 진량읍·압량읍에서 가장 많다.
공업은 대구와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금호강의 용수와 범람원의 낮고 평탄한 토지를 얻을 수 있어서 각종 섬유공장과 과일 및 식품 가공공장이 분포한다. 제조업체는 모두 2,006개로 종사원은 1만 6508명에 이르러 전체인구의 6.8%를 차지한다.
상업활동을 보면, 1960년대 이후 전국적인 공설시장 및 정기시장의 상설화 추세에 따라 경산장은 거의 상설화되었고, 경산읍·하양읍·자인면·압량읍·용성면 등 5개 면에서 5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이들 시장에서는 청과물과 흑염소·소 등이 주로 거래되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사과는 전국에서 으뜸을 차지하였다. 특히, 하양장에서는 사과, 용성장·자인장에서는 포도·복숭아, 경산장에서는 여름에 딸기, 가을에 포도, 겨울에 사과가 거래되고, 그 밖에도 소와 흑염소가 거래되었다. 그러나 이들 정기시장은 점차 없어지는 추세이고 지금은 경산장이 5·10일, 하양장이 4·9일, 자인장이 3·8일에 열리는데 주요 거래품목은 포도·사과·복숭아·대추 등이다.
2015년 현재 대형마트 2곳이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가 시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고 있어 서울·대구·경주·부산 등과 연결되고 있으며, 경부선철도가 시의 서부를 지나 서울∼부산과 연결되고 있다. 이 밖에 국도 25호가 대구·경산·밀양, 국도 4호가 대구∼영천과 연결되는 등 크고 작은 도로가 있어 편리하다.
관광
이 지방에는 많은 명승고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성암산(聖巖山)·장대산(將臺山)과 신라의 고찰인 반룡사·환성사·불굴사·경흥사(慶興寺)·선본사(禪本寺) 등이 있다. 팔공산의 한 자락인 환성산에 자리잡은 환성사는 835년(흥덕왕 10)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했으며 고려 말 조선 초의 건물인 대웅전이 보물로, 심검당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원효대사와 김유신장군이 수도했다는 석굴이 유명한 불굴사 경내에는 자연암반에 조성한 약사여래입상과 삼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팔공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해발 850m의 관봉 정상에 9세기경 불심 깊은 장인이 조각했다고 하는 관봉석조여래좌상 일명 갓바위부처가 있고 그 아래 갓바위를 관리하는 선본사가 있다.
남산면 상대리 에는 상대온천(上大溫泉)이 있는데 이곳은 예로부터 대추골더운바위샘(온정암) 혹은 온수골이라 불리던 곳이다. 수온은 36℃ 가량 되며 90∼120m의 맥반석 성분이 용해된 황산이온·마그네슘·코발트·무수인산·중탄산소다·칼슘 등이 함유된 알칼리성이 강한 황산천으로, 위장병·간장병·신경통·류머티즘·비뇨기질환·동맥경화증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구·부산 등지에서 욕객이 몰려들고 있다.
또 남천면 신석리에는 납동약수탕이 있는데, 1910년대에 금을 캐기 위하여 광맥을 파들어가다가 굴의 중간에서 발견한 것으로, 철분이 많고 위장병·빈혈증·상습변비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그 밖에 상대온천에서 가까운 반곡면의 반곡약수탕(盤谷藥水湯)은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성면은 조선시대부터 못이 많기로 유명했는데, 현재 낚시터로 안성맞춤인 40여 개의 못이 있어 많은 낚시꾼들이 찾아오고 있다. 진량읍의 문천지 또한 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임당고분을 비롯한 고분군(古墳群)과 중요무형문화재인 한장군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읍·면
1. 진량읍(珍良邑)
시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46.18㎢, 인구 3만 845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신상리이다. 조선시대에 진량면 북반은 옛 하양현에, 남반은 옛 자인현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옛 자인군 중북면과 하북면, 하양군 낙산면(落山面)과 중림면(中林面)을 합쳐 진량면이 되었다.
대부분이 낮은 구릉성 산지와 그 사이에 전개된 소규모의 곡저평야로 구성되었으며, 북서부에는 넓은 금호평야가 있다. 면의 곳곳에는 금호강과 금호강의 크고 작은 지류가 흐르고 문천지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저수지가 산재하여 수리가 매우 양호하다.
총경지면적은 14.67㎢로 전체면적의 31.8%, 임야면적은 16.52㎢로 35.8%, 기타 32.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10.67㎢로 72.73%를 차지하고 밭이 4.1㎢로 27.2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특용작물을 비롯하여 농산물과 대추의 생산이 많고 양봉도 성하다. 또한, 양돈과 한우·젖소·개·토끼 등의 사육도 활발하다. 신상리의 토산지(吐山池)에서는 예로부터 말[水草] 생산을 주요 부업으로 하였으며, 소수의 섬유공장과 과실가공공장이 있다.
도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달리고 있고, 언양~우보간의 지방도가 면의 서부를, 자인~대창간의 군도가 동부를 통과하고 있으며, 특히 대구와의 교통이 빈번하다. 문화유적은 대원리에 대원사(大院寺)가 있는데, 흥선대원군의 군호(君號)에 저촉된다 하여 죽원사(竹院寺)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으며, 대구대학교·영남신학대학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45개 행정리, 25개 법정리 신상(新上)·선화(仙花)·보인(甫仁)·봉회(鳳會)·북(北)·부기(富基)·양기(良基)·상림(上林)·내리(內里)·문천(文川)·평사(坪沙)·다문(多文)·아사(阿沙)·평사(平沙)·시문(柴門)·현내(縣內)·마곡(麻谷)·광석(廣石)·신제(新堤)·대원(大院)·속초(束草)·안촌(雁村)·황제(凰堤)·당곡(堂谷)·가야(佳野), 323개 반, 59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2006년).
2. 하양읍(河陽邑)
시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48.61㎢, 인구 2만 6446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금락리이다. 고려시대에는 하주(河州)라고 했다가 1018년(현종 9)에 하양(河陽)으로, 1742년(영조 18)에 화성현(花城縣)으로, 1895년에는 하양군으로 고쳤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산군에 편입되어 하양면이 되었고,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에 무학산(593m)·소리산(342m), 북서쪽에 환성산이 있으며, 환성산에서 발원하는 조산천(造山川)이 동남쪽으로 흘러 금호강에 흘러든다. 동쪽은 청통천(淸通川)이 남쪽 경계의 금호강으로 흐르며, 동남부는 이들 하천이 퇴적한 충적지로서 비옥한 농경지를 형성한다. 강수량이 그리 적은 편은 아니나 용수가 부족하여 월장못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저수지를 축조했다.
총경지면적은 11.42㎢로 전체면적의 24.49%, 임야면적은 26.77㎢로 55.05%, 기타 20.4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5.37㎢로 47%를 차지하고 밭이 6.05㎢로 53%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주곡농업 이외에 사과·복숭아·포도 등 과수 생산이 많다. 최근 영천시 등 인접 평야의 도시화에 따라 배추·무·파·양파·연근 등 채소재배가 증가하고 있으며, 한우·토끼·젖소·닭·돼지 등의 가축사육도 활발하다. 농산물을 원료로 하여 식품가공업이 발달했고, 그 밖에 섬유공업 등 각종 공장이 있어 근교지로서 도시화 현상이 뚜렷하다.
교통로는 국도·경부고속도로와 대구선이 남부에 집결되어 지나며, 하양역·청천역이 있다. 문화유적은 부호리에 금호서원, 남하리에 서원지·금포정, 교리에 봉양서당지(鳳陽書堂址)·효자각·하양향교, 사기리에 환성사 등이 있다.
2009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경일대학교·호산대학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33개 행정리, 16개 법정리 버금락(琴樂)·동서(東西)·도리(島里)·서사(西沙)·사기(沙器)·대곡(大谷)·교(校)·한사(翰斯)·대학(大鶴)·부호(釜湖)·은호(隱湖)·남하(南河)·대조(大鳥)·청천(淸泉)·양지(陽地)·환상(環上), 301개 반, 39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3. 남산면(南産面)
시의 남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38.17㎢, 인구 3,96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산양리이다. 원래 옛 자인군의 상남면(上南面)과 하남면(下南面)에 해당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병합하여 남산면이 되었다.
면의 동·남·서부는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대왕산(大王山, 605m)·용산(龍山, 435m)이 각각 남쪽 경계와 동쪽 경계에 솟아 있다. 북부는 면계를 따라 흐르는 오목천이 곡류하면서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남부산지에서 발원하는 4개의 지류가 북류하여 이와 합류한다. 취락과 경지는 오목천과 4개 지류의 연안에 집중·분포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7.76㎢로 20.3%, 임야면적은 22.97㎢로 60%, 기타 19.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5.45㎢로 70.23%를 차지하고 밭이 2.3㎢로 29.7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주곡 이외에 복숭아·포도·사과 등의 과수농업이 활발하며, 임산물 중에서는 산나물이 많이 난다. 또한, 한우·젖소·사슴·개·산양·토끼·오리·칠면조 등의 사육도 활발하다. 특히, 연하리나 인흥리에서는 축산업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은 언양~우보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남산~압량간의 군도가 북부 경계 부근을 통과하고 있다. 상대리에 상대온천, 반곡리의 반곡마을에는 위장에 좋다는 반곡약수가 있다. 문화유적은 안심리의 대곡(大谷)에 대국사(大國寺)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사지와 사층석탑이 남아 있다. 하대리에 도동재, 조곡리에 조곡서원이 있다.
2009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24개 행정리, 18개 법정리 산양(山陽)·경(慶)·남곡(藍谷)·갈지(葛旨)·평기(坪基)·안심(安心)·흥정(興政)·사림(沙林)·연하(蓮荷)·우검(尤儉)·사월(沙月)·송내(松內)·조곡(早谷)·전지(田旨)·반곡(盤谷)·상대(上大)··하대(下大)·인흥(仁興), 66개 반, 34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남천면(南川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0.53㎢, 인구 3,4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성리이다. 신라시대부터 경산의 한 구역으로서, 1897년에 경산군 남면이라고 칭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천면으로 개칭되었다.
동부는 백자산(栢紫山)·선의산(756m)·용각산(龍角山, 693m) 등에, 서부는 성암산·병풍산(屛風山, 576m)·동학산(東鶴山, 603m)·상원산(上院山, 670m) 등에 둘러싸여 있어 이 시에서 산지가 가장 많은 면이다. 남경에서 발원한 남천이 산지를 동서로 양분하고 북류하면서 삼성리 이북에서 긴 충적평야를 형성하여, 이 곳에 경지·교통로·취락이 집중 분포한다.
총경지면적은 5.2㎢로 7.37%, 임야면적은 57.86㎢로 82%, 기타 10.6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3.54㎢로 68%를 차지하고 밭이 1.57㎢로 3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주곡 이외에 양봉이 성하고 산수유가 생산되며, 양계와 한우·돼지·산양·오리 등의 목축도 활발하다. 남천의 범람원에는 사과와 포도 등 과수재배가 성하다. 신석리의 교자마을에서는 경사가 급한 산기슭을 이용하여 염소방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구일리의 배끝마을에서는 양계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남천 상류에는 과거에 금속광(金屬鑛)인 백마광산(白馬鑛山)이 있었다. 근래에는 가구·섬유·냉동·간장 공장 등이 세워져 농촌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교통은 진해~청주간의 국도와 경부선이 하곡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대구·청도 등지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송백리에 태봉(胎峰), 산전리에 경흥사가 있다. 협석리는 초계정씨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와 영남외국어대학이 있다. 행정구역은 17개 행정리, 12개 법정리 삼성(三省)·구일(九日)·협석(俠石)·산전(山田)·대명(大鳴)·신석(申石)·금곡(金谷)·송백(松柏)·신방(新方)·흥산(興山)·원(院)·하도(河圖), 65개 반 25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2006년).
5. 압량읍(押梁邑)
시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18.34㎢, 인구는 2만 1,528(2019년 11월 30일 현재). 면 소재지는 부적리이다. 원래 압독국의 수도였으나 102년신라에 병합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경산군 동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자인군 서면을 합하여 압량면이 되었다. 2020년 1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부는 금호평야의 일부로서 금호강과 그 지류인 오목천이 흐른다. 금호평야의 북동쪽에는 전설이 얽힌 연지(蓮池)와 건흥(乾興)들이 있다. 중부는 높이 100m 이하의 구릉과 곡저평야, 그리고 크고 작은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단에는 백자산(栢紫山)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지가 있다.
총경지면적은 10.23㎢로 55.8%, 임야면적은 1.95㎢로 10.6%, 기타 33.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6.34㎢로 62%를 차지하고 밭이 3.89㎢로 38%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주곡농업 이외에 포도·사과·대추 등의 과수업이 활발하고, 특용작물로는 참깨·들깨가 생산된다. 양계업과 젖소·돼지·개 등의 목축업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신대리는 축산시범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밀양~경산간의 지방도가 면의 북부와 중부를 통과하고, 대구~하양간의 도로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현흥리에 선돌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중학교 1개교,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25개 행정리, 16개 법정리 부적(夫迪)·신대(新垈)·압량(押梁)·용암(龍巖)·금구(金龜)·현흥(賢興)·인안(仁安)·의송(儀松)·신촌(新村)·내(乃)·가일(駕日)·당음(唐音)·신월(新月)·백안(百安)·강서(江西)·당리(堂里) 131개 반, 25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2006년).
6. 와촌면(瓦村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83㎢, 인구 6,08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촌리이다. 고려 충목왕 때 영양군(永陽郡), 즉 지금의 영천군에 속하였으나, 영양군의 개편으로 하주군(河州郡)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령군 남면과 합하여 와촌면이 되었다.
팔공산지의 연장부로서 북서부에 관봉(冠峰, 850m) 등이 솟아 있고, 서부산지에서 서쪽으로 뻗은 2개의 평행하는 산맥이 이 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부에는 금호강의 지류인 청통천이 관류하면서 상류의 음양리 부근에서 전형적인 산간분지를, 중류에서는 쉬염들·구만들 등의 비교적 넓은 곡저평야를, 하류에서는 금호평야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1.51㎢로 24%, 임야면적은 28.1㎢로 58.7%, 기타 17.3%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7.8㎢로 67.8%를 차지하고 밭이 3.8㎢로 32.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주곡농업 이외에 호두·산나물 등의 임산물 생산이 많고, 밤·사과·포도·복숭아·자두 등의 과수재배도 활발하며, 양봉·양계·양돈과 한우·사슴·개 등의 목축도 행해지고 있는데, 특히 한우사육은 1위이다.
교통은 언양~우보 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공산~와촌 간의 군도가 면의 중앙부를 횡단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강학리에 불굴사와 삼층석탑, 대한리에 관암석조여래좌상과 선본암, 계전리에 원계서원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25개 행정리, 14개 법정리 덕촌(德村)·소월(所月)·시천(匙川)·계당(溪堂)·상암(上巖)·계전(溪田)·동강(東江)·박사(博沙)·대한(大閑)·신한(新閒)·강학(江鶴)·대동(大同)·음양(陰陽)·용천(龍泉), 93개 반, 52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2006년).
7. 용성면(龍城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79.41㎢, 인구는 3,6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당리리이다. 원래 노사화현(奴斯火縣)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자인현으로 되어 장산군에 속하였다. 1895년에 자인현이 자인군으로 승격되었고 그 뒤 자인군이 경산군에 합병될 때 자인군의 상동면(上東面)과 하동면(下東面)이 합쳐져 용성면이 되었다.
삼악산·금학산·금박산(金箔山, 432m)·구룡산(九龍山, 675m)·발백산(髮白山)·용산(龍山, 435m)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나, 당리리 부근에서는 관란천(觀瀾川)의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으며, 그 지류가 산지 속을 깊이 침식하면서 산간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1.89㎢로 14.8%, 임야면적은 60.2㎢로 75.8%, 기타 9.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8.1㎢로 68.1%를 차지하고 밭이 3.79㎢로 31.9%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주곡농업 이외에 과수재배가 행해지고 도토리가 생산되며 한우·젖소·산양 등의 사육이 성하다.
도로는 언양~우보 간의 지방도가 면의 남서부를 통과하고 있으나 교통은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미산리에 관란서원이 있었는데, 고종 때 철폐되어 지금은 작은 규모의 건물만 남아 있다. 고죽리 입구에 있는 칠성바위는 정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게 해 준다는 속신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덕천리는 경주김씨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31개 행정리, 20개 법정리 당리(堂里)·매남(梅南)·내촌(內村)·외촌(外村)·도덕(道德)·고죽(孤竹)·미산(美山)·고은(古銀)·쟁광(爭光)·덕천(德川)·송림(松林)·부제(釜堤)·곡신(谷新)·곡란(谷蘭)·용산(龍山)·용천(龍川)·대종(大宗)·가척(加尺)·용전(龍田)·부일(扶日), 85개 반, 42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2006년).
8. 자인면(慈仁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22.05㎢, 인구는 6,2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북사리이다. 옛날의 노사화현 또는 기화현(其火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자인현으로 개칭하여 장산군에 속하였다. 고려 현종 때 경주부에 속했다가 조선 인조 때 복현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산군에 합병되어 자인면이 되었다.
북동부에는 도천산·금학산·삼악산 등이 면계를 둘러싸고 있고, 남·서부에는 압량읍·남산면과의 경계를 따라 금호강의 지류인 오목천이 흐르며 오목천평야를 형성하였다.
총경지면적은 9.73㎢로 44%, 임야면적은 6.64㎢로 30.1%, 기타 25.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은 6.83㎢로 70%를 차지하고 밭이 2.9로 30%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2008년).
평야지대에서 쌀이 생산되며, 사과와 채소 재배가 성하고, 양봉·양계와 젖소·돼지·사슴 등의 사육도 성하다. 서부리의 소전거리에는 40년 전부터 우시장이 섰다.
도로는 언양~우보간의 지방도, 밀양~경산간의 지방도, 자인~대창간의 군도가 면의 중앙부에서 교차하고 있으며, 대구와의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교촌리에 고분군과 자인향교가 있고, 지금은 메워진 버들못 옆에 한장군이 내리쳤다는 ‘검흔석(劍痕石)’이 남아 있다. 서부리에 한장군묘와 사당과 있다. 울옥리는 함양박씨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으며, 대경대학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21개 행정리, 16개 법정리 북사(北四)·동부(東部)·서부(西部)·교촌(校村)·읍천(邑川)·신도(新島)·신관(新官)·단북(丹北)·울옥(蔚玉)·옥천(玉川)·원당(元堂)·계남(桂南)·계림(鷄林)·일언(日彦)·남촌(南村)·남신(南新), 107개 반, 31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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